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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땀을 흘렸다. 셔츠에 하얀색 소금기가 가득 남아있다. 빨래 바구니로 옷을 벗어던져 넣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는다. 그리고 다시 나와 물을 한잔 마시고, 다시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뜨거운 김이 나오면 다행인데, 두 번에 한 번꼴로 차가운 물이 계속 나온다.
안방으로 돌아와 보일러 조절기를 살펴본다.
점검에 불이 들어와있고 E3가 깜빡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부엌 옆 보일러실에 가서 전원 코드를 뽑았다가, 다섯을 센 후 다시 꽂는다.
그리도 다시 욕실에 들어가 오른손을 뻗어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지 확인한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면 다행이고, 아니면 똑같은 짓을 한 번 더 반복한다.
이 집에 이사 온 지 벌써 10달이 흘렀다. 겨울에는 난방/온수를 하루 종일 틀어놓으니 뜨거운 물이 계속 흘러나왔는데, 봄부터였던가? 온수로 바꾼 후에는 뜨거운 물이 선택적으로 나온다. 물론 나의 선택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기 제품은 리셋하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국룰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보일러실에서 코드를 뽑았다가 꽂았다가를 해봤다. 역시나 그렇게 하니 뜨거운 물이 나왔다.
98년 11월 16일?로 보이는 시공년월일.
시공표지판이 보일러 앞에 붙어있다.
한 달에 한 번 가스비를 내라는 메시지가 오면, 노후 보일러 교체하라며 알림이 온다. 몇 달 전부터 교체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막상 또 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목돈이 나가니 그것 또한 아깝다.
그냥 코드 몇 번 뽑았다 꽂았다를 반복하면 쉽게 해결이 되는 문제니까. 그렇게 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리 집 아파트의 준공은 2005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시공이 98년일까.
원래 95년인가 96년인가에 지었는데, 중간에 무슨 문제인지 모를 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다시 재게 된 것이라고 누가 게시판에 써놓은 글을 봤다.
검색해보니 97년 말 시공사가 부도가 나서 준공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2005년에 준공이 된 것.
뜨거운 물은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계속 잘 나온다. 중간에 끊기는 법은 거의 없다.
지난번에 뜨거운 물 켜놓은지 모르고 한참 동안 다른 일을 하다 보니 욕실이 완전 사우나가 되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족히 한 시간은 계속 뜨거운 물이 나왔을 것이리라.
시작이 가끔 어렵지, 시작하면 큰 문제가 없는 아직은 쓸만한 보일러다.
그런 보일러가 요즘 들어 몇 번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나오는 현상이 발견됐다. 샤워하고 있는데, 물이 서서히 식어가다가 차가운 물로 바뀌어버렸다. 머리나 몸에 거품이 없다면 다행인데, 한 번은 결국 찬물로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차가워, 으으으
처음 뜨거운 물이 안 나왔을 때 '20년 넘게 멀쩡하다가, 나랑 사니까 고장이 나는 건가' 싶었다. 아니면 그전에도 고장이 났었는데 전 주인들이 그냥 참고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 집을 산 건 이 집을 최초 분양받았던 아저씨로부터였다. 그분은 이 집을 분양받아 조금 살다가 계속 세를 줬다고 한다. 중간에 자신의 딸도 일 년 정도 살았다고 했다. 그동안 세입자들은 보일러를 교체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 문제가 없어서 그랬을까, 자기 집이 아니었으니까 그랬던 것일까. 집주인에게 고쳐달라고 했는데 안 해줬던 걸까?
사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멀쩡한 이 보일러가 가끔 고장이 난다는 것. 기계도 오래되면 깜빡깜빡하는가 보다. 기계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 안 그럴까. 완벽한 기계도 사람도 없다.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 기계를 사던가, 고쳐서 쓰던가, 참고 살던가. 아쉽게 사람은 고쳐 쓰기엔 어렵고, 참고 살기엔 그 문제의 크기마다 다를 것이며, 어쩌면 너무 큰 문제라면 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계의 선택지는 몇 가지 없어 쉬운데, 사람은 어렵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기계처럼 단순치 않다.
조금 인생을 심플하게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너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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